[오풍균의 현지르포] 독일 베를린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분단의 역사가 있던 곳


맥주와 소시지의 고장 독일, ‘곰’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우리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구상에서 정치적 이념에 따라 남과 북, 동과 서로 나눠 진 분단의 아픔을 갖고 있는 동서양 대표적인 민족이 한국과 독일 이였기 때문이다. 독일이 통일된 이후 한편으로는 게르만 민족에 대한 우리의 부러움이기도 했고 남과 북, 한민족의 부끄럼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61년에 동독이 베를린장벽을 구축한 이래 1989년 동유럽에 불어 닥친 개방화 바람과 함께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이어 1990년 12월3일에는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합함으로써 베를린은 냉전과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고 하나가 됐다. 그 후 1991년, 베를린을 통일독일의 수도가 된 것이다.


베를린의 대표적인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 Brandenburger Tor)은 한때 동서 베를린의 경계선이었다. 문 위에는 네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탄 승리의 여신 ‘콰드리가’가 조각 되어 있다.


베를린의 중심가 파리저 광장(Pariser Platz)에 있는 건축물로 179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Friedrich Wilhelm II)시대에 완공한 높이 26m, 가로 65.5m인 고대양식 건축물이다. 이는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정문인 프로필라에(Propylaea)를 모방해 만든 것으로 오랫동안 독일에서 발행하는 우표와 주화의 그림에 도안이 됐기도 했으며 현재 유로화에도 새겨져 있다.  


베를린의 중심 브란덴부르크 문 왼쪽으로 국회의사당, 중앙에 방송 송신탑, 옆에 둥근 녹색지붕의 베르린돔, 우측으로 붉은 베르린 시청사가 있다.


또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홀로코스트의 경고(Das Holocaust-Mahnmal)’란 이름 되어진 기념비가 있는 나찌에게 희생된 수백만 유태인들에 대한 추모공원이다. 


묘비석과 같은 회색 비석들은 미로처럼 배치돼 있고 돌의 높이 4m내지 9m이며, 비석 사이사이로 한사람이 간신히 지날 정도의 좁은 골목과 같은 틈이 있다. 멀리서 보면 높낮이가 다른 돌들로 인하여 파도가 치는 모습이다. 


이 곳을 찾는 여행객들은 좁은 골목을 지나며 숙연하게 돌들을 손으로 쓰다듬고 고개를 숙여 애도의 마음을 표하기도 한다. 


또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남쪽으로 1km가량 떨어져 있는 곳에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이 있는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본격 개발돼 이제는 베를린 교통의 중심지가 됐다. 이곳에 있는 소니 센터는 독특한 건축양식과 화려함으로 베를린에서 가장 현대적인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이 근방에 있는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는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소련과 미국의 탱크가 대치 했던 곳으로 이곳을 통해서만 동서독이 왕래을 할 수 있었다. 현재는 부스를 만들어 그 당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베를린은 최근에 환경의 도시로 부각 되고 있다. 세계 곳곳을 여행 하면서 필자는 재미 삼아 그 나라의 인심을 평가하는 방법이 있다. 참새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데 참새에게 먹이를 내밀 었을때 손바닥의 먹이를 직접 쪼아 먹는 등 사람 가까이에 접근하는 참새가 있으면 인심이 좋은 곳이고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도망 가버리는 곳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인데 부라덴 부르크의 참새는 많은 관광객이 붐빔에도 손바닥 위에 놓은 먹이를 쪼아 먹으며 사람에 대한 경계를 하지 않는다. 


어쨌든 베를린은 독일역사의 축소판 지도임에 틀림 없다.







<관련사진>아래 사이트의 '오풍균의 세상보기'에 관련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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